<< 다 ~ 라 >>/-- 2001~07년 발행

리투아니아 50리타 - Jonas Basanavicius

은하철도의 귀환 2019. 8. 28. 09:00

요나스 바사나비치우스 [ Jonas Basanavicius ( 1851 ~ 1927 ) ]


리투아니아의 의사, 정치가, 과학자

 그는 1873년 역사학과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으나, 1년 뒤 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1879년 졸업하고 그로부터 25년을 거의 불가리아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보냈다.

 리투아니아의 문화·정치를 다룬 중요한 잡지 '아우슈라(1883~86)'의 창간호를 편집했다. 차르

체제가 리투아니아어 서적 출판을 금지했기 때문에 이 잡지는 동프로이센에서 인쇄되어

리투아니아로 몰래 반입되었으며, 리투아니아 민족운동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05년부터 빌뉴스에서 살았다. 리투아니아의 도덕적인 지도자로 대접받았고 1905년

리투아니아의 자치를 요구한 빌뉴스 '대회의'의 의장을 맡았다. 1917년 리투아니아 의회

의원으로 뽑혔으며 리투아니아 의회는 1918년 2월 16일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선언했다.


 한편 그는 1907년 리투아니아 과학협회를 설립함으로써 리투아니아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으며, 그뒤 20여 년 동안 이 학회의 회장, 학회지 편집인, 그리고 고고학과 민속학 연구가로

활동했다. 그가 펴낸 많은 출판물들은 주로 리투아니아 민속에 관한 자료 모음이다. 그는 또한

리투아니아 민족은 트라코프리기아어파의 후손이라는 가설을 내세웠고 이를 뒷받침하는

몇 편의 논문을 썼다.


전면 도안은 요나스 바사나비치우스의 모습입니다.

후면 도안은 빌뉴스 대성당과 우측 언덕 위에 대공 제디미나스 기념탑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