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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20파운드 - Daniel O'Connell

은하철도의 귀환 2021. 8.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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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오코넬 [ Daniel O'Connell ( 1775 ~ 1847 ) ]

 

아일랜드의 민족운동 지도자

 그는 1798년 아일랜드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능숙한 말솜씨로 법정을 민족주의의 공개

토론장으로 만들곤 했다. 1800년 통합법에 의해 아일랜드 의회가 폐지되자, 영국 의회가

아일랜드 국민을 대표한다는 명분을 정당화할 수 있으려면 반 가톨릭 법률들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23년 리처드 랄러 실과 함께 가톨릭 협회를 만들었는데, 곧 아일랜드 사제단과

변호사, 그리고 교육받은 가톨릭 평신도들의 지지를 받았다. 결국 회원이 많아지자 정부도 이

협회를 억압할 수 없었다. 1826년 신가톨릭협회로 재편된 이 협회는 대지주층의 후원을 받는

몇몇 의원 후보자들을 낙선시켰다.

 

 그는 가톨릭교도였으므로 하원의원이 될 자격이 없었지만, 1828년 클레어 주에서 영국 정부와

가톨릭교도 해방을 모두 지지하는 입후보자에게 승리했다.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영국 총리

아서 웰즐리에게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해 아일랜드의 가톨릭 세력에 대한 중대한 양보조치를

얻어냈다. 1829년 가톨릭교도 해방령이 통과되었고, 그는 재선거라는 형식적 절차를 통해 단독

입후보해서 하원의원이 되었다. 아일랜드 전역에 걸친 일련의 대중집회 때문에 국가내란 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3개월간(1844. 6~9) 감옥생활을 하다가 항소심에서 풀려났다. 그뒤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고 민족주의운동의 주도권은 급진적인 청년 아일랜드당으로 넘어갔다.

 

전면 도안은 다니엘 오코넬과 데리네인에 있는 그의 생가의 모습입니다.

후면 도안은 아일랜드 헌법을 배경으로 더블린에 있는 법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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